삶과 신앙이 일치하는 성경적 가치 교육 PLI
- 다음 주에 PLI 스터디용 교재가 출시됩니다.
한국교회에서 캐톨릭의 ‘성과 속의 분리’를 참된 신앙인의 삶으로 가르치고, 여기에 더해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두려워한 일제가 교회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설파한 ‘정교분리’를 기독교인의 교양이라도 되는 양,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3년전 PLI가 탄생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위대함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성경이 절대적 권위를 회복하는 신앙의 본질로의 회귀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초교파적으로 성경의 무오류를 믿고, 성경의 권위를 삶 속에서 회복하는 신앙에 동의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기, 캐톨릭의 문제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적이지 않은 미신이 판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교회의 부패 문제를 앞세워 성도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정치적으로 좌편향 된 운동들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개혁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패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가 삶속에서 회복되는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면 교회에 부패가 발붙일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인양 신앙의 대상이 되어 정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인의 올바른 정치참여와 양립할 수 없는 부작용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선이고, 그에 반대하면 악이라는 이분법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이분법은 자신들을 절대 선으로 미화하는 저급한 좌파 정치의 특징으로 우리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인 누가 집권하는가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치세를 하나님 나라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세속 정치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중 누가 선입니까? 누구의 정치가 선이고 악입니까?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순교하게 만든 박해자였습니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신 영역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마5:13-16).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은 열심히 정치에 참여하고, 경제활동을 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의 입법을 막고, 공적 영역에서 무신론과 유물론을 진리로 포장해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정책을 막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헌신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와 같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의 수호와 확장,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것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리를 타인에게 법으로 강요하는 신정국가는 종교개혁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헌정과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한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구약의 신정국가를 현대적 현실정치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캐톨릭 교회가 세속 정치를 ‘컨트롤’하는 중세적 정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 긴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겨자씨처럼 미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막4:30-32).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구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과 믿음은 주님 다시 올 때까지입니다. 어떤 정권이나 세속 국가가 하나님 나라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각 영역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지상에서 그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적 가치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장악할 수 있도록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PLI 스터디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엘정책연구원(ELPI)- PLI(Political Leadership Institute) 대표,
울산대 교수, 법학박사 이정훈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인양 신앙의 대상이 되어 정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인의 올바른 정치참여와 양립할 수 없는 부작용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선이고, 그에 반대하면 악이라는 이분법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이분법은 자신들을 절대 선으로 미화하는 저급한 좌파 정치의 특징으로 우리 기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신 영역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마5:13-16).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은 열심히 정치에 참여하고, 경제활동을 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의 입법을 막고, 공적 영역에서 무신론과 유물론을 진리로 포장해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정책을 막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 긴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겨자씨처럼 미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막4:30-32).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구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