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I칼럼] 정치의 본질(6) – ‘위대한 소통가’ 로널드 레이건 (2019.01.05)

사무국
201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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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그리고 조직과 커뮤니케이션 (3)


‘커뮤니케이션의 달인’ 로널드 레이건

엘정책연구원에서 기독교적이고, 자유민주적, 그리고 공화주의적이며, 올바른 보수 우파의 가치와 원칙을 가진 차세대 정치 리더, 시민운동가, 학생운동가, 기자, 공무원 등을 양성하기 위한 PLI(Political Leadership Institute)를 시작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PLI가 설립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PLI의 시작에 앞서, 일련의 연재 칼럼을 통해 한국 사회에 PLI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필자주)

  • ‘위대한 소통가’ 로널드 레이건

배리 골드워터는 상대였던 린든 존슨 진영, 좌편향된 언론 등은 물론 소속 당이던 공화당 내 록펠러 진영과 중도 보수 온건 지지자들에 의해서도 ‘극우’, ‘전쟁광’, ‘정신병자’, ‘미치광이’로 몰렸지만, 그 자신에게도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부주의하게 툭툭 튀어나온 정제되지 못한 투박하고 거친 언행으로 인해 상대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빌미를 본인이 스스로 제공했다. 이에 비해 골드워터처럼 강경한 보수주의자였던 레이건 대통령은 골드워터와 거의 동일한 이념과 원칙, 가치, 정책, 공약을 가지고 있었고,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골드워터와 마찬가지로 전쟁광이라는 공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압도적 지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물론 대통령직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레이건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설득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호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탁월하게 소통하는 레이건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도 사랑하게 됐다. 레이건은 고령으로 인해 국무회의 도중 코를 골면서 자기도 할 정도로 헛점도 있었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인간미를 보여주거나 상대의 적대감과 무장을 완전히 해제시키는 특유의 유머 본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했으며, 국민들도 그를 감싸 안았다.

레이건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으로 자타공인을 받고 있는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났던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있다. 레이건은 특유의 낙관적 신념과 기질, 유머, 그리고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은 물론 자신에 대해 반대하는 미국인들까지도 설득해 전폭적인 지지 속에 일관적으로 보수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 미국 경제를 살리고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자신이 ‘악의 제국’이라고 명명한 소련을 무너뜨린 것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위신이 추락해가던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다시 재건해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이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치인도 바로 타협하지 않는 자신의 분명하고 선명한 메시지, 원칙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론과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국민들이 믿고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국민들이 사랑할 수 있는 레이건과 같은 인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레이건의 이 탁월했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우고 자신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통령이 된 대표적인 인물로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를 꼽을 수 있다. 좌파 진영에서 레이건에 의해 선거에서 미 정치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한 이후 레이건을 열심히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의 경우, 자신의 지지자들과 공화당 진영 내에선 어느 정도 효과적인 커뮤니케이터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편으로부터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을 넘어 매우 적대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고 국민 통합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적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첨예한 갈등과 경쟁이 지속되던 냉전 시대 와중에도 좌우 진영을 뛰어 넘어 국민 대다수로부터 사랑과 존경, 지지를 받았던 레이건만큼의 탁월한 소통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홍준표 등 한국의 보수 우파 정치인들에게서도 레이건과 같은 위대한 소통가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물론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자신의 진영과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다수의 적들을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고, 다수의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 한국의 많은 보수 우파들은 현재 안타깝게도 레이건이 아니라 골드워터의 길을 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뜻을 펼치기 위해 반드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 체제다. 그래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은 반드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라는 것은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에 빠지거나 자신의 이념, 가치, 원칙에 대해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기회주의적으로, 정치공학적으로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다. 듣기 좋게 들리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나 감언이설을 남발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메시지가 다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포장을 잘 하고, 또 설득력 있고 효과적이게 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거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호적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브랜딩(브랜드 만들기) 기술, 메시징 기술, 마케팅 기술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지금도 끊임 없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투자를 하고 있다. 리더십 인스티튜트(LI)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이 커뮤니케이션 분야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자유 우파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심각할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좋은 제품을 가지고도 디자인 능력, 포장 능력, 마케팅 능력이 떨어져서 실적 부진으로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다수가 승리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하고서는 결코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 자유 우파도 좌파와 좌편향 언론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깊이 새겨져 있는 ‘친일’, ‘독재’, ‘재벌’, ‘적폐’, ‘불통’, ‘꼴통’, ‘수구’, ‘극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서는, 즉 국민 다수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보다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게 보수 자유 우파의 이념과 원칙, 가치를 설명할 수 있기 전까지는 좌파를 이기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다. 꼭 정치인이 아니라 보수 자유 우파의 이념과 가치, 원칙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보수 자유 우파 시민단체들은 반드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배워 위대한 소통가가 되어야 한다.

레이건은 골드워터에 대한 지지연설 이후 정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고, 그가 주창한 가치와 원칙대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 신장을 위한 ‘작은 정부’, ‘감세’, 기독교와 가족, 도덕을 강조하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의 추구’ 등을 통해 연임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적자였던 주 정부의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된 대학가 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등 성공적으로 주지사직을 수행했다.

레이건이 주지사로 나설 당시 미국은 장기화되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 마약과 술, 음악, 섹스 등으로 대변되는 히피 운동, 사회주의 광풍 등 전통적인 미국에 반하는 움직임들이 일시에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미국의 오랜 전통적 가치가 흐려지고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여기에다 미국이 많은 것을 쏟아부었던 베트남전마저도 월남의 공산화로 끝나면서 미국은 패배주의와 자기 혐오에 빠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인권 운동과 여성 운동 등도 미국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1973년에는 연방대법원에 의해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미국의 기독교계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던 골드워터가 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이어 공화당 소속인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태 및 하야가 이어지면서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완전히 절망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골드워터 지지연설을 통해 보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 당시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부활시키고, 감세를 통한 작은 정부 및 기업의 자유 확대로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만들고, 특히 당시 반전운동의 중심지였던 UC버클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했다. 레이건은 실제로 당선 이후 미국 정부에 집단적으로 도전하는 체제전복의 아지트처럼 되어 가던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UC 버클리 내 반전시위대를 정리하기 위해 강력하게 나섰는데, 그만큼 학생들도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때 총장과 적지 않은 교수들도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에게 동조했는데, 레이건이 이들과 험악하게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생중계로 전파를 타는 등 UC버클리 문제를 둘러싼 험악한 분위기는 식어질 줄 몰랐다. 레이건은 결국 경찰력만으로는 학생 소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주방위군까지 동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유혈충돌이 벌어지고 말았다. 주방위군이 20일 동안 교내에 진주하면서 헬리콥터와 최루가스 등을 동원해 시위진압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시위 학생 한 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이었다. 미 대학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였지만, 레이건은 물러서지 않고 시위진압에 성공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하면서 맞서 싸우고 결국은 무너뜨리기까지 했던 투사 기질이 이 때부터 분명했던 셈이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였고, 유머스럽고 낙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호락호락하거나 물러터진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강경한 보수주의자, 원칙주의자였고, 기독교 신앙과 도덕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미국을 지키고 보수하기 위해 싸우는 투사였다. 분명한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있던 레이건은 대중에게 유연하고 친근한 언어와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자신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고 강단있는 어조로 전통적인 미국을 회복하자고 부르짖고, 뛰어난 언변으로 상대방을 압살했다. 그리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물리력까지 동원해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며 결국 이기는 결기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레이건이 위대한 소통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골드워터보다 더 심각한 비난과 공격을 당해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이건은 오히려 공화당 지지자들은 물론  많은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 패배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무너져가는 미국을 지킬 수 있는 보수의 아이콘, 미국을 다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는 카리스마있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자신이 비춰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산주의, 소련과의 숙명의 대결을 선언하고 일대 결전을 예고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오는 소련의 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요격해 버리겠다는 소위 '스타워즈(Star Wars)'라고 불린 우주방위계획을 내놓는 등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엄청난 군비 증강에 나섰다. 그 때까지 전시가 아닌 평화의 때에 레이건처럼 많은 국방비를 쓴 대통령은 없었다. 골드워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은 레이건에 대해서도 ‘전쟁광’이라고 비난하면서 당장 소련과 함께 군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레이건도 골드워터처럼 전쟁광이라는 공격을 당한 것이다. 레이건의 이념과 가치, 원칙, 그리고 정책은 배리 골드워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그것에 대한 강력한 반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골드워터는 말로만 싸웠다면, 주지사와 대통령이 되며 최고권력자가 된 레이건은 물리적으로도 싸웠기 때문에 훨씬 더 강한 비난과 공격, 반대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적, 국민적 인기를 얻지 못한 골드워터와 달리 레이건의 인기는 대단해서 198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원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소속인 레이건을 지지한 사람들을 일컫는 ‘레이건 데모크래츠(Reagan Democrats)’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레이건은 또 골드워터만큼이나 강력한 원칙적인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였고 자신의 원칙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어렵고 복잡하고 심지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메시지도 자신만의 화법으로 전달해 많은 국민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감동까지 줄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메시지 전달 능력만큼은 정말 탁월한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통령이 된 이후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라디오 국정연설을 직접 생방송으로 진행했으며, TV 국정연설도 자주하면서 국민들과의 소통에 힘썼다. 레이건의 딸조차도 아버지인 레이건의 연설을 들으면서 대중연설과 청중들을 휘어잡는 위트와 재치 있는 언변이 하늘로부터 받은 출중한 재능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레이건은 재임 시절은 물론이고 퇴임 이후에도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 가장 성공한 대통령,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에 항상 상위에 이름이 오르고 있다.

레이건은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과의 의사소통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 공화당 소속인, 그것도 극우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보수자유주의적 색깔이 뚜렷했던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이건은 임기 첫 해 동안 자신의 핵심 공약 대부분을 실천했는데, 민주당 의원들과의 소통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레이건은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의회를 직접 방문해 야당 의원들을 만났다. 의회를 방문해 의원들을 직접 설득한 대통령은 레이건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레이건은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바꾸지 않았지만,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상대의 마음을 얻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위대한 소통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1년 2월 6일 레이건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특별성명을 내고 “레이건은 국민과의 소통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굳은 신념가였다”며 “그가 소통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확신과 낙관이야말로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레이건은 미국인들에게 근면과 개인의 책임이라는 가치를 다시 일깨워줬으며, 생각이 다른 민주당 의회 지도자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해 나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소통에 있어서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데, 그런 오마바도 인정할 정도의 인물이 레이건이었다. 오바마는 레이건이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굳은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 신념을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할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었던 것이다. 상대로부터도 인정 받을 정도로 레이건은 정말 위대한 소통가였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특히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 국민들과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이 레이건의 소통 능력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반드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기술을 키워가야 한다. (계속)


- 노승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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