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유착과 교회의 타락 [이정훈교수 칼럼]

사무국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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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길어졌습니다.

왜 이정훈 교수가 요즘 같은 시국에 발언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 연구에 몰두하느라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SNS에 의견을 표명하는 것의 '무의함'이 긴 침묵을 만들었지도 모르겠습니다.


1. 정교유착과 교회의 타락


신좌파와 주사파의 연합, 그리고 PC정치가 한국교회와 종교의 자유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앞장서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싸웠습니다. 수많은 음해와 협박, 가시적인 공격들이 있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진리는 승리한다는 확신때문이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복음주의'를 가장하여 세력을 확장하던 좌파 정치 목사들이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들과 힘겨운 일전을 벌였습니다.

이 기간동안, 이들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겠다는 분들도 세력화 되었습니다.


  문제는 대중을 많이 동원한 교회내 세력의 정치참여 방식과 내용이 교회사의 비극과 많이 닮아서, 보수 정치도 위협할뿐만 아니라 교회도 함께 몰락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정치와 교회'가 유착하고, 성직임면권을 놓고 교회권력과 세속권력이 더러운 '합종연횡'을 반복하면서 소위 로마카톨릭은 교회라고 부르기 민망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교회는 정치와 유착하는 반면, 신앙은 오히려 "성과 속"의 철저한 분리로 "기독교"라는 정체성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비극에 직면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바로 이 황당한 비정상의 상황을 정상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과 속"의 분리가 아니라, 삶과 신앙이 일치하면서 성도다운 성도,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미국헌법은 완전한 신앙의 자유인 "국교부인(정교분리)"의 원칙을 선언합니다. 이것이 유럽과 다르게, 미국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2. 정치에 대한 몰이해는 잘못된 신앙 때문이다.


  요즘 미국 정치상황을 보면 참담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트럼프교 신자들이 미국과 한국에서 창궐하고 있습니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패배할 때, 또 억울함을 느낄 때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도'를 넘은 정도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기준이 트럼프 지지 여부가 될 수 있습니까?

이러한 황당함은 납득불가능의 경지를 넘어서 슬프기까지 합니다.

신앙은 영원하지만 정치인은 선택의 영역일 뿐입니다.

정권은 다른 세력 간에 경쟁하고 주고 받는 것일 뿐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가 트럼프를 비판하자, 파이퍼가 좌빨이 되었다는 둥-별의별 악담들이 SNS를 휘저었습니다. 

파이퍼 목사의 지적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경청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치인이나 정파의 정책적-정치적 중요성보다 "죄"의 문제에 무감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메세지는 나름 의미가 있는- 꼭 새겨들어야만 하는 한 편의 '설교'였습니다.

정치지도자의 언설과 행동은 그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습니다.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중요한 메세지라는 뜻입니다.


이후, 웨인 그루뎀 박사가 파이퍼 목사에게 보내는 애정어린 편지를 공개합니다. 그는 여러가지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성공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이 트럼프 지지를 철회할 필요가 없다고 밝힙니다.  그의 주장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트럼프를 계속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지를 철회할 것인가(바이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의 문제는 선택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죄"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웨인 그루뎀의 주장의 배경에는 세속 정치의 아젠다나 정책적 선호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정치인을 선거에서 선택하는 것과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보수적으로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체제와 정책을 지속하는 관점에서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입장을 지지합니다.


정치인과 정파에 대한 선택적 입장이 아니라, 트럼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맹목적 추종이 종교적 차원에서 등장합니다. 

원인은 음모론입니다. 정권은 주고받는 것일 뿐이지만 음모론자에게는 정권교체는 "종말"과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예수님 재림)의 종말론을 믿지 않고, 

세속의 음모론으로 인한 종말을 걱정해서 특정 정치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현실을 납득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헬라의 "아데미"와 뭐가 다릅니까?

크도다- "트럼프여-"

이것이 우상입니다.


4년 뒤, 탈환을 준비하거나,

바이든 시대의 교회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궁구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3. 한국도 동일하다.


'대깨문'을 비판하지만, 정작 트럼프를 신앙의 대상이자 목적으로 삼은 "대깨트"의 행동이 때깨문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의 Capitol(의사당) 은 미국 정치사와 헌정사에서 그냥 건물이 아닙니다.


법철학과 헌법을 전공으로 하는 외국인 교수인 제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물이 유린당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미국의 지식인들은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경찰관이 사망하고, 시위대가 사망한 사건이 바로 Capitol에서 벌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4년간 트럼프 정부가 매우 잘한 정책들에 대한 평가는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트럼프가 의미하는 정치사적 의의도 증발해 버렸습니다).


트럼프는 미국헌정사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음모입니까?


문재인 정권과 그 맹목적 추종세력인 대깨문은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입니다. 이제 그들의 악한 권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본격적인 레임덕의 시작입니다.


중차대한 시기에 그와 그의 세력을 구하기 위해,

다시 3월1일, 광화문에 모이시겠습니까?

도대체 정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신앙에 기초하여

기독교인의 올바른 정치참여가 무엇인지부터 숙고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구요?

그 시간은 도대체 누구의 시간입니까?

음모론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돈을 버는 자들의 시간입니까?


악이 판쳐서 정말로 지구의 종말이 근접해 온다면,

역설적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잘못된 열심이 악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정치는 복잡하고 진리는 단순합니다"


심플한 "복음"으로 돌아갑시다.


복잡한 정치를 "트럼프냐 아니냐"로 단순화 시키고,


한 쪽은 "대깨전"이 되어서,

화염병이 교회에서 날아다니고(누가 던졌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한 쪽은

"천사종류"에 대해 빡세게 논쟁하던 

시절의 쓸데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역설적으로 "신학의 실종"을

초래하는 그 어리석음을 왜 반복합니까?


제가 학부생들에게 헌법에 대해 강의할 때

아주 디테일한 거장들의 학설 대립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성도들이 잘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디테일한

신학논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존재감이나 자존감이 높아집니까?

- 이것은 오히려 핵심을 모른다는 '반증' 아닙니까?


한국교회가 한 쪽은 "대깨전", 

다른 한 쪽은 불필요한 신학 디테일 논쟁, 

또 다른 한 쪽은 "대깨문" 이면,

남은 것은 멸시와 몰락 뿐입니까?


표절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SNS에 

집필 중인 원고도 공개 못하는 수준을 개혁해야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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