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정책 칼럼


Eternal Liberty Policy Institute (ELPI)

[PLI 칼럼] 정치의 본질(7) - 레이건은 어떻게 준비된 대통령이 되었나?

사무국
2019-01-17
조회수 453

[PLI 칼럼] 정치의 본질(7) – 이론, 그리고 조직과 커뮤니케이션 (4)

레이건은 어떻게 준비된 대통령이 되었나?

엘정책연구원에서 기독교적이고, 자유민주적, 그리고 공화주의적이며, 올바른 보수 우파의 가치와 원칙을 가진 차세대 정치 리더, 시민운동가, 학생운동가, 기자, 공무원 등을 양성하기 위한 PLI(Political Leadership Institute)를 시작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PLI가 설립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PLI의 시작에 앞서, 일련의 연재 칼럼을 통해 한국 사회에 PLI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필자주)

지금부터는 레이건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레이건이 하루 아침에 위대한 소통가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대학을 졸업한 시절은 1932년으로, 대공황의 한파가 한창 몰아치고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와중이었다. 고작 21살의 그는 큰 도시로 나가 라디오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높아진 취업 장벽 속에 취업 실패의 아픔을 꼽씹고 있었다. 오히려 그 때는 대공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문재인 정권 하에서 경제가 침체되고 특히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제 인상으로 인해 초토화된 것처럼(미국과 다른 점은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 실험으로, 인재(人災)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레이건의 아버지도 대공황의 희생양이 되어 구두외판원 일자리를 잃었다. 오늘날 경기 악화 속에 취업 실패로 절망하고 있는 한국의 청년들을 레이건은 아마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취업실패자 청년, 취업재수생 레이건은 이 때 대학 시절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알아왔던 한 사업가의 조언을 받게 된다. 그 사업가는 외판원은 250개의 문을 두드려야 겨우 물건 하나를 팔 수 있다면서, 아무리 거절을 당해도 실망해서는 안된다고 레이건에게 조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실무자나 손님을 만나 자신의 상품에 대해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후에 레이건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 취업에 서공한다. 레이건은 자신이 받았던 조언 중에 결과가 가장 좋았던 조언 중 하나라고 이 때를 회상한다. 오늘 대기업 입사나 좋은 조건의 일자리만 노리는 한국의 청년 취업생들에게는,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아 성공으로 나아간, 대통령까지 된 레이건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바늘구멍이라도 찾기 위해 열심히 취업의 문을 두드린 레이건은 어려운 중에 결국 취업에 성공해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스포츠를 중계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귀로만 듣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스포츠 경기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아주 실감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는데, 레이건은 현장감 넘치게 방송을 해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당시의 스포츠 중계는 직접 경기를 보면서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전신으로 시시각각 날아오는 전보문만을 보면서 경기 실황을 중계하는 것으로, 실제 스포츠 중계가 아니라 하나의 가상 쑈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꿈이었던 레이건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열성적으로 중계를 했다. 그는 이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사람이 없어도 많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점점 더 발전해갔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인정을 받아가던 그는 영화 배우가 되는데, 주연 배우로 나설 정도의 인기 스타는 아니었지만 약 50여편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3류 배우 또는 B급 배우였지만, 그는 화려한 스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레이건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도 배우로 일했던 경험은 도움이 됐다. 특히 레이건은 뛰어난 언변과 협상 능력으로 영화배우협회 활동에 주력해 두 차례나 회장을 지냈고, 이 때 헐리우드에 스며드는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투철한 반공주의자가 된다. 그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명명하고, 맞서 싸워 결국에는 소련을 무너뜨린 것을 생각하면, 그의 영화배우 경력은 냉전을 끝내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려야 할 시대적 위임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레이건은 전설의 경영자로 알려진 '잭 웰치CEO'로 유명한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가 제작을 후원한 CBS 방송 프로그램의 호스트를 맡으면서 GE와 관계를 맺게 되었고, 무려 8년 동안 이어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이를 통해서 그의 인생에도 일대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레이건은 방송 외에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GE의 홍보 활동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과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을 설득해 자신의 지지자로 만드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레이건이 맡은 일은 GE사의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고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GE는 홍보를 위해 영입한 레이건이 방송 외에 매년 16주 동안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GE의 생산공장과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종업원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도록 요청했다. 당시 GE 경영진은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고, 그 계획의 하나가 바로 ‘위대한 소통가’, ‘위대한 설득가’ 레이건의 현장 방문이었던 것이다. GE 공장 투어를 하면서 레이건은 8년 동안 25만 명의 GE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는데, 그들에게 연설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블루컬러 층과 매우 가까워지게 됐다. 레이건이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연설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1946년 미국이 전국적인 파업에 시달렸을 때, GE에서는 단 한 건의 노사 분규도 없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레이건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놓고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상대와 대화하면서 설득하고 관철시키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지만,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기술과 능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진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데, 따라서 상대를 대화로 설득해 나의 지지자로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결국 GE 일을 하면서 준비된 대통령으로 점점 더 완성체로 빚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레이건은 이 때까지도 민주당원이었는데, GE의 경영진들을 통해서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을 확신했고, GE 공장을 찾아다니며 연설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과중한 세금 부담과 정부 규제 등에서도 눈을 뜨게 됐다. 또 점점 더 자유와 작은 정부, 도덕적 가치를 신봉하는 미국에 대한 믿음, 그리고 거대 정부의 비효율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서 보수주의자로 점차 변신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지지 정당까지 공화당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레이건은 하루 아침에 위대한 소통가가 된 것이 아니고, 하루 아침에 보수주의자가 된 것도 아니었으며, 하루 아침에 대통령으로 깜짝 등장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취업 실패의 아픔을 겪었고, 주류가 아닌 2류, 3류의 삶을 살기도 했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민주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또 자신과 입장이 완전히 다른 이들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가장 어려운 일도 해내야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길 수 있는 화려한 커리어를 전혀 쌓지 못했다. 그가 배우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내내 자질론에 시달리는 등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레이건도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자라는 사실을 항상 겸허하게 인정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가 지난 삶을 통해 쌓아온 내공은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얕잡아볼 수준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그의 성공적인 캘리포니아 주지사직과 미국 대통령직 수행을 통해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한국인들의 문제는 화려한 커리어, 다른 말로 하면 ‘스펙’에 너무나 집착한다는 것이다. 진짜 실력, 내공을 쌓기 보다, 사람들에게 그럴 듯 하게 보이기 위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또 다른 문제는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이 좋은 것이고, 그런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다. 또 돈이 많이 벌리는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는 것이 성공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실력을, 내 내공을 키워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경험이다. 알바의 경험도, 취업 실패의 경험도, 2류, 3류 배우의 경험도 가치 없고 쓸모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요 훈련 장소다. 대한민국에서도 전문 정치인이나 판검사, 변호사 출신이 아니라, 또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라, 비주류, 하류의 삶을 살아온 이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 탄탄한 실력과 내공을 쌓은 이들이 사회의 리더들이 되고, 또 정치 지도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레이건은 입만 열면 ‘흙수저’, ‘헬조선’을 말하면서 절망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들에게, 높고 크고 화려한 것만 좋아하는 이들에게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성공으로 나아간, 그리고 그 성공으로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안겨다 준 가장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노승현 PLI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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