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교수 칼럼] 영국의 석학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기독교의 역사"(Christian History : An Introduction)

사무국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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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기독교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영국의 석학 알리스터 맥그라스 책의 원래 제목은 "Christian History : An Introduction"이다.

뭘 모르고 읽을 때는 술술 읽혀 가독성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뭘 알고 읽으면 숨이 턱턱 막히면서 철학사나 정치사상사를 다시 찾아 보게 만들고, 아니면 바빙크 개혁교의학을 뒤져보게 만들거나 벽돌모양의 신학책들을 찾아보게 만든다.

"An Introduction"이 아닌 것이다. 대가들은 항상 이렇게 장난을 친다. 고의로? 아니다. 이 양반은 진짜로 자기 책이 "introduction"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류를 "미친 진실"이라고 부른다. 

미첬다. 그래서 고수다.


그는 지식대중(이 지식이 대부분 착각에 근거한 것이지만)이 "공식화"하고 있는 "종교개혁"에 대해서도 "엿"먹으라고 말한다.

내가 그의 책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종교개혁과 "민주주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주의"라기보다는 현상으로서의 "민주화"이다. 모국어로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으면서 열리는 신세계 "만인제사장"의 시대다.


2020년은 문교주와 그 신도들의 새로운 "이신칭의"시대였다.

민주주의와 "의로움"은 교주와 그의 사이비 사도들의 거짓말을 믿음으로써 "획득"된다.

그러나, 알리스터 맥그라스 박사가 설명하는 종교개혁과 민주화는 이런 더러운 "시궁창"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 시궁창은 2020년 개신교계에도 두 가지 차원으로 열렸다.

한 편으로, 교회 안에서 문교주 사이비 집단을 따르는 자들이 커밍아웃했다.

또 다른 집단은 119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반포한 교서 "우주의 창조주처럼"에 담긴 캐톨릭 정치의식을 실천하는 분들이었다. 

문제는 선동의 아수라장 속에서, 이 선동을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방식이 "캐톨릭 정치"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기독청"을 세운다는 둥, 캐톨릭식의 기독교 국가를 만든다는 둥- 어이가 없었지만, 어차피  이분들에게는 종교개혁이 무엇인지, 캐톨릭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주"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 무지의 향연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역설적으로, 이 분들은 캐톨릭과 함께하는 WCC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정치는 캐톨릭식으로 참여하고, 캐톨릭은 이단이라는 희한한 정교분리의 탄생이다.

여기에 더해, 조용히 살던 군소 노점상들이 대거 저자에 창궐했다.

위기를 틈타서 여기저기서 장사판을 벌였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명제를 광고지에 붙여넣고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한다는 곳이 등장하고, "아무말 대찬치"를 "향연"인양 설파하며 마이너 세계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내었다.

"오성과 이성"을 철학적으로 구분하는 차원에서 "개념"은 지식계에 발을 들여놓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성은 진리를 획득하기 위한 긴 여정에 돌입해야만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다가만 수준에서, 기독교를 논하는 슬픔이 체화되어 "신앙=개념"이라는 "비극"이 희극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개신교의 마이너 세계에서는 이런 것을 말릴 능력도 걸러내 줄 필터도 없었다.

이것이 16세기 유럽의 저자거리가 아닌, 2020년 한국의 저자거리의 리얼한 진실이었다.   

철학의 개념들과 맥락들이 대치동 논술학원 고딩에도 못미치는 수준에서 왜곡되고, 이것이 성경과 비벼지면서 "목불인견"의 비빔밥들이 여기저기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젠더문제-사회주의를 비롯하여, 교회와 국가를 위협하는 위험 속에서도, 좌파들의 비웃음을 사기에 딱 좋은 삼류버전 비빔밥 가게들이 개업을 했다.

이러한 3류 군소 가게들끼리 저자거리에서 먹고살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기도 했다. 교회와 국가의 위기가 이들에게는 장사의 기회였다.

2021년에는 "Introduction"으로 돌아가자.

"An introduction"이라는 대가의 겸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An"이라는 부정관사가 답이다. 
우리의 노력들과 역작들은 그저 "하나"의 "제시"일 뿐이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 사이에도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상호간 투쟁이 있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바로 "더 선명하게 성경의 권위가 삶속에서 살아나고, 그리스도가 왕이 되기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저자거리 장사를 위한 이전 투구였는가"의 차원의 문제다.

정신을 차리자. 장사는 "돈-생계"를 위해서도 "명예"를 위해서도 할 수 있다.

2021년에는 우리 함께 정화되고 개혁된 거리에서 만나자.

2021년 1월 1일 해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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